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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이사장 / (사)충남포럼.

[천안=로컬충남] 한국에서는 전공과목 이외에도 부득이 강의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교수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다.

 

이를 빗댄 말이 “새내기 교수는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가르친다. 시간이 지나 중견 교수가 되면 아는 것만 가르친다. 원로 교수가 되면 필요한 것만 가르친다. 그러다 정년이 가까워져 오면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 오랜 교직 경험이 있으신 나이 든 선배들이 털어놓는 경험담을 들으며 신기해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겸연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나이 들어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30년 전에 만들었던 강의 계획서를 보니 위의 말이 농담으로 지나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했던 강의 노트는 범위도 강의의 양도 많았다. 좋게 말하면 성실했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고 난잡하다.

 

의욕에 넘친 나머지 모르는 것까지 가르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학생들은 초짜 교수의 과욕을 알면서도 다 받아주었다.

 

당시는 모든 것이 수기로 통하던 시대다. 강의 계획서도 강의 노트도 밤새워 손으로 썼다.

 

학생들을 면담하고 작성한 면담 기록부도 손으로 써야 했다. 기록부에 ‘장래 희망’ 항목이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전공이 행정학이므로 90% 이상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법학 전공자는 사법고시 아니면 법률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되돌아보니 전공을 한 대로 근무하는 제자는 30%도 채 안 된다. 그것도 민간 기업의 기획실이나 총무부에서 근무하는 제자까지 유사 전공으로 쳐서 그렇다.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9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한국 대학생의 정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동구라파의 민주화와 소련의 붕괴, 독재 타도, 반미·반자본주의의 외침과 남북통일 운동에 많은 학생이 동조하였다. 인문학을 비롯한 독서는 뒷전이고 매일 최루탄 가스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걸쭉한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허기를 채워야 했다.

 

그 후 시간의 강은 흘러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의가 제자리를 잡아갔다. 나도 나이가 들어 강의 경력 15년이 되면서 아는 것, 필요한 것만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러다 정년이 가까워져 오면서 기억나는 것만 가르치는 시간이 많아졌다.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4년마다 신상품이 학교로 밀려온다. 그들에게 적응하다 보면 나이를 잊는 경우가 많다.

 

4년을 주기로 전혀 다른 학생들이 다가온다. 그들의 외모는 물론이고 생각도 다른 다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도 달라져 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학생들이 필요로 한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 경우 학생과 교수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져 간다.

 

학생들이 필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그들과의 소통이요, 상호 적응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교육은 선생과 학생이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즉 사회가 생각하는 ‘필요’와 학생이 원하는 ‘필요’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부지런한 교수가 되어서 이 필요’의 만족도에 다가 설수 있다.

 

나는 대학을 떠나 사회로 나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밖에서 요즘 학생들의 화두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의 두 글자는 ‘공정’이다. 기준이 아주 분명하다. 과정은 투명하고 뚜렷하다.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쩌다 예외를 두기라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사소한 것일수록 목숨 걸고 따진다. 비근한 예로 출결 체크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지각 횟수가 올바로 체크되어 그에 따른 벌칙이 뒤따르는가?를 꼼꼼히 따진다. 출석이나 지각이 문제가 아니라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아닌 형식 요건에 더 매달린다.

 

왜 그럴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공하느냐보다 어떻게 낙오하지 않느냐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은 빠짐없이 해야 한다. 시험에서는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1점짜리 봉사 점수는 물론이고 별 의미 없는 인턴증명서까지 긁어모아야 한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여기서 살아남는 사람은 소수점 이하에서 앞서있는 사람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절실함이 우리의 젊은이들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공부를 잘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을 목표 삼는다. 하지만 삶의 질을 들여다보면 공무원이 꿈인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어도 행복을 주지 못한다. 공무원 입성은 경쟁과 불안의 종식을 의미하지만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분명하지만, 정치 논쟁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다 정치 사회현상에 대한 의견을 내라고 하면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분명하게 판단한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기 생각을 표출한다. 한마디로 쿨 하다.

 

이념, 통일, 민족과 같은 거대한 담론이나 위선적 감상은‘노잼’ 즉 재미없음으로 일축하면서 제 할 일만 한다. 그게 오늘의 20대 젊은이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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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오월에 뒤돌아 본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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